중부(仲父)이신 장두원님께서 전주 KBS 총국장으로 부임했을 때다. 대학자이자 존경받는 원로이신 강암 송성용 선생께 부임 인사를 가셨다고 한다. “그래, 집안이 어디인고?”라는 물음에 중부께서 “서도 장가입니다.”라고 답하자 순간 강암 선생이 반가움을 가지고 되물으셨다고 한다.
“그럼 현준이를 아는가?”, “제 백부(伯父)이십니다.”
큰할아버지이신 장현준님과 송성용 선생은 한 스승을 모시고 동문수학한 친구사이였다.
그 스승이 현 송하진 지사의 조부이신 유재 송기면 선생이다.
강암 선생은 중부님께 큰할아버님의 안부를 물으시면서 ‘왜 그동안 연락 한 번 없었는지’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전하셨다고 한다. 중부님께서 강암 선생님께 그 이유를 말씀드렸다.
스승이신 유재 송기면 선생께서 돌아가셨을 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장례에 참여하지 못한데 대한 죄스러움 때문이었다. 그 말씀을 들은 강암 선생은 중부님과 함께 바로 금구(서도) 큰할아버님댁을 찾으셨다고 한다. 중부님이 전하신 바에 의하면 두 분은 한동안 서로 부등 켜 안고 우셨다고 한다. 그 후 두 분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서로에 대한 우정을 간직하셨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화’ 그 자체뿐이다. 사람의 관계성에서 오는 친밀함과 신뢰도 변한다.
피천득과 아사코가 아니어도 인연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 수 십 년만의 만남은 찰나의 반가움 이후 찾아드는 어색함과 이질감 앞에서 길을 잃게 된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편함이 더해지면 파국으로 치닫는다.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의 우정도 그렇게 파괴된 후 회복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강암 선생과 큰할아버지가 보여주신 우정은 놀랍다. 친구의 아버지이자 스승의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한데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괴로워하신 큰할아버지와 그런 친구의 아픔을 기꺼이 이해하고 보듬어주신 강암 선생의 모습은 나와 같은 범인(凡人)의 영역이 아니다. 생각해본다. 우정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후한(後漢)의 진중(陳重)과 뇌의(雷義)의 우정에 대해 당대 사람들은 이렇게 칭찬했다.
“교칠이 굳다고 하지만 진중과 뇌의의 우정만은 못하다.(膠漆自謂堅 不如雷與陳)”
진중과 뇌의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부레풀과 옻나무의 칠처럼 뗄 수 없는 인간관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관계는 때로 욕심과 허영의 투영물에 불과할 때가 있다. 그것은 결코 우정이 될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우정의 모습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친구들을 내 기준과 욕심 때문에 떠나보냈던가. 어쩌면 내가 생각한 우정의 모습이 왜곡되어 있었기에 그 모든 결별을 초래했는지 모른다.
한 번 깨어진 우정은 같은 운명의 도자기와 다르지 않다. 깨어진 도자기를 제 아무리 잘 복원한다 한들 그것이 어찌 제 모습일 수 있겠는가. 더욱 우울한 것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관계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히 제한된다. 유한한 인간의 생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관계성의 축소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소중한 인연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우정이라는 단어에 국한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 자리한 인연 하나 하나가 그 대상이다. 저장된 수많은 전화번호 중에 개인적인 일로 전화할 만한 대상은 그다지 떠오르지 않는다. 누구 말대로 모임에 나가면 보고 싶은 사람은 안 보이고 불편한 대상만 넘쳐나는 것도 그렇다. 문득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제 40대 후반이 된 효정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서울 뚝섬 근처에 있던 외삼촌 댁에 들렀을 때다. 나는 중학생, 효정이는 국민학생이었다. 너무도 오랜만에 간접적으로 연락을 했다. 내가 쓴 책을 보내며 이렇게 한 줄을 적었다.
“여전히 내 기억 속 어린 소녀로 남아있는 효정이에게! 상록 오빠가.”
효정이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문득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 중엔 천국에 있는 분도 있고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분도 있다. 아니 그보다 더한 거리감은 내 마음 속에 있다.
큰할아버님과 강암 선생님이 보여주신 우정이 그립다.
장상록 <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October 29, 2020 at 08: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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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할아버님과 강암 선생, 우정을 말하다 - 전북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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