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민중미술 주도한 ‘현실과 발언’ 작가들 ‘그림과 말 2020’전
‘현실과 발언’ 참여 작가들의 1984년 어느 날 ‘줄서기’와 2020년 ‘그림과 말 2020’전을 열며 연출한 ‘줄서기’.
현실 눈감은 미술계 비판하며 결성
당시 권력에 ‘불온’ 작가들로 낙인
‘…기존의 미술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것이든,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것이든 유한층의 속물적 취향에 아첨하고 있거나, 고답적인 관념의 유희를 고집함으로써 진정한 자기와 이웃의 현실을 소외, 격리시켜 왔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주도적 역할을 한 미술동인 ‘현실과 발언’(현발) 창립 취지문 일부다.
20~30대 젊은 작가·평론가들은 이웃의 삶, 사회현실에 눈감은 미술계를 비판하며 1979년 말 ‘현발’을 결성했다. 예술작품으로도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던 독재권력의 시절, 작가들은 ‘현실을 미술로 발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권력은 ‘불온한’ 미술가·작품으로 낙인찍고, 1980년 10월17일 문예진흥원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에서의 ‘현발’ 창립전 개막마저 파행시켰다. 전기 차단 등으로 전시회 개막은 결국 촛불 속에서 진행됐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중추였던 미술동인 ‘현실과 발언’(현발) 참여 작가 16명이 기획전 ‘그림과 말 2020’전을 학고재에서 열고 있다. 사진은 강요배의 1981년 작 ‘꽃’(종이에 포스터컬러·파스텔, 156×156㎝). 학고재 제공
하지만 작가들의 작업은 계속됐고, 뜻을 같이하는 미술그룹들도 곳곳에서 생겨나 민중들의 삶, 사회현실을 작품에 반영하는 민중미술이 활성화된다. ‘현발’을 비롯한 당시 미술그룹 작가들은 작가로서의 주체적 발언을 작품에 강조했다. 또 판화·사진·만화 등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실험과 연구도 시도했다. 미술 영역의 확장, 일상 삶과 예술의 경계 허물기 등은 향후 한국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90년 ‘현발’ 해체를 선언한 작가들은 이후 저마다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치열한 작품활동으로 주목받아 왔다.
이젠 60~70대 원로가 된 ‘현발’ 참여 작가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그림과 말 2020’이란 이름의 기획전을 학고재갤러리(서울 삼청로)에서 마련한 것이다. 전시명은 ‘현발’이 1982년 연 ‘행복의 모습’전 당시 발간한 회지 ‘그림과 말’에서 따왔다. 1980년대와 2020년 지금, 그림과 말을 둘러싸고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당시나 지금이나 작가와 작품에 여전히 유효한 것들을 성찰해보는 전시회다. 또 원로들의 농익은 예술혼이 스며든 작품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심정수의 ‘새가 있는 풍경’(2017, 동판 단조용접·오석, 112×105×35㎝). 학고재 제공
원로가 된 16명의 작품 100여점
1980년대 작품과 신작을 ‘나란히’
현실 인식·작업 과정 변화 한눈에
전시회에는 작가 16명이 참여했다. 냉철한 현실 인식 속에 작업을 계속하는 강요배, 김건희, 김정헌, 노원희, 민정기, 박불똥, 박재동, 성완경, 손장섭, 신경호, 심정수, 안규철, 이태호, 임옥상, 정동석, 주재환 작가다. 신작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 작품 100여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장에는 특히 1980년대 작품과 신작이 나란히 내걸려 시대 변화상, 작가의 세상 인식과 작업 과정의 변화 등도 눈길을 잡는다.
강요배의 ‘꽃’(1981)과 ‘노야(老野)’(2011), 김건희의 ‘얼얼덜덜’(1980)과 ‘금강사군첩 중 촛대바위’(2019), 김정헌의 ‘행복을 찾아서’(1982)와 ‘갈등을 넘어 녹색으로’(2020), 민정기의 ‘1939년’(1983)과 ‘1939년’(2020), 손장섭의 ‘역사의 창-광화문’(1981)과 ‘울릉도 향나무’(2012), 신경호의 ‘넋이라도 있고 없고-초혼’(1980)과 ‘넋이라도 있고 없고-칼보다 강한 그대에게’(2014), 심정수의 ‘응시’(1984)·‘사슬을 끊고’(1990)와 ‘새가 있는 풍경’(2017), 임옥상의 ‘신문-땅굴 1-6’(1978)과 ‘흙 A4’(2018), 정동석의 ‘반풍경 839-39’(1983)와 ‘깊은 생각에 잠긴 218-011’(2018) 등이 대표적이다.
‘현발’ 동인이라는 공통점은 있으나 작가들은 자신만의 작품철학, 화업 40여년의 조형미를 선보이고 있다. 주제도 정치·사회적 이슈와 분단 문제부터 환경과 생태·생명운동에의 관심, 평범한 시민들의 애환과 일상 등 폭넓다. 특히 땀 냄새 나는 삶의 현장,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나아가 사회적 모순 등에 눈을 감지 않은 작업 태도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젊은 예술가들에게 이 시대의 무엇을 어떻게 작품에 담아낼 것인가를 묻는다. 관람객에게 지금 살아가는 현실이 어떠한가, 더 나은 사회를 어떻게 꿈꿀 것인가를 질문하는 듯하다.
전시 기간 중 갤러리 내 프로젝트 공간에선 현장 진행형 설치 작업이 이뤄지고, 오는 25일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술’을 주제로 한 토론회도 열린다. 전시는 이달 31일까지.
July 13, 2020 at 06:39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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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현실을 말하다…그때도, 오늘도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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