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이슈는 곧잘 성별 갈등으로 비화된다.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으로 '권력형 성폭력'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자 비슷한 양상이 또 반복되고 있다. '여성들의 말만 믿어준다'거나 '특정 직군에서 여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식의 발화 때문에 여지 없이 논쟁이 커진다. '성별'을 뛰어넘은 페미니즘 담론은 없을까. 남성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김병용(39)씨는 전북여성인권센터 산하 남성모임 '시시콜콜'에서 활동하고 있다. 약 5년 전 첫 모임을 가진 '시시콜콜'은 성매매부터 페미니즘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그런 김씨가 박 전 시장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성계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사건을 명확히 '권력형 성폭력'의 측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김씨는 "직장에서 상급자는 무엇을 잘못했다고 지적받지 않는 위치"라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잘못하지는 않았는지, 말실수를 했는지 자기 검열을 하지 않으면 너무나 쉽게 (폭력적인)행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상급자의 위치에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이 배치돼 있다"며 "기존의 남성주의적 습관에 본인의 '위치'가 더해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시콜콜의 또 다른 회원 문주현(38)씨는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가 생각보다 견고하다는 걸 박 전 시장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됐다"며 "특히 우리 사회가 점점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들은 최근 벌어지는 2차 가해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공론화한 A씨에게는 '증거를 내놓아라', '피해자가 맞다면 신상을 공개하라' 같은 2차 가해성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김씨는 "성폭력 문제는 발화 자체가 전쟁의 시작"이라며 "폭행에는 상처가 수반되고, 사기에는 재산상의 손해가 수반되는 것과 달리 피해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런 경우 피해자가 피해를 입증해도 사람들이 피해자의 말을 믿을까 말까다. 스스로 신상을 드러내지 못하는 피해자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된다"고 덧붙였다.
문씨는 '펜스룰'(혹시 모를 성 비위를 원천 차단하겠다며 여성을 직장 등에서 배제하겠다는 논리)조차 권력에 기반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문씨는 "거리를 두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위치를 보면 대부분 지자체장이나 권력자들"이라며 "펜스룰 자체가 하나의 위계 구조를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이걸 깨는 것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박 전 시장을 지지하는 많은 여성도 2차 가해에 가담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틀의 질서는 성문제라는 생각이 든다"고 부연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아버지들의 모임인 '페미생활'(前 아빠페미)에서 활동하는 이종훈(53)씨는 성차별에 대한 인식에도 '세대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씨는 "남성들의 경우, 예전에는 여성차별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여성들을 더 우대해주는 각종 정책 때문에 역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성차별적인 상황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흘러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라며 "여기에 여성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일처럼 공감하지만, 남성들은 일단 거리부터 두고 바라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성별 갈등은 이전부터 존재해온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페미니즘을 비롯한 문제에 대해 그동안 쉬쉬해왔던 것뿐"이라며 "일부 빅 마우스(Big Mouth)들만 말해와서 그렇지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남성들에게 성 관련 문제를 지적하면, 대개 '망신당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측면이 큰 것 같다"며 "원인에 대해서 논의한다기보다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겠냐'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게 된다. 일종의 남성연대를 펼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지금의 '성별 갈등'이 불가피한 것이라고 진단하면서도 '건강한 해결책'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갈등이 계속 곪아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이 이어진다면 모두에게 마이너스"라며 "우리 사회에 남성이 없을 수도 없고, 펜스룰을 쳐서 여성들에게 '저쪽으로 모두 가라'고 하는 일도 불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들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기에 여성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나는 살아오면서 문제가 없었던 건지 등 자기 위치와 성찰을 통해 해법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씨는 "모든 남성을 '잠재적인 가해자'로 몰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이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은 '너도 나쁜 놈이야'를 말하는 게 아니다. 통계 수치가 보여주듯, 아직 '가부장적 질서'가 남아있고, 그런 질서 안에서 남성들이 벌일 수 있는 가해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펜스룰은 어찌 됐든 '나만 조심하면 돼'라는 의식이 있는 것"이라며 "개인만 조심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 해법을 어떻게 모색할지 이제는 남성의 시선으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이씨는 '공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씨는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사회구조가 존재하고 여성이 성희롱 같은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대부분 경험 속에서 알고 있다"며 "이 문제를 '우리 자녀의 일이라면', '우리 동네 사람의 일이라면'으로 치환해서 생각하면 느낌이 다르다"고 밝혔다.
August 01, 2020 at 05:05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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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공부하는 남성들…'권력형 성폭력'을 말하다 -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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