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도를말하다 / 오쇼 라즈니쉬, 류시화 옮김 / 청아출판사
오쇼 라즈니쉬의 장자 강의를 류시화가 옮긴 이 책은 시종 인간의 에고ego에 천착한다. 에고라 함은 자아(自我)와 그 의미를 같이할 수 있는데 사람에게는 자의든 타의든 자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현상의 삶에서 자아 형성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이로 인해 반목과 고통을 안고 사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장자는 있음 그대로의 삶 즉, 내 안의 자아를 소멸함으로써 자유의 삶을 염원한다. 예컨대 새와 나무와 물 등 모든 자연스러운 것에는 에고가 없기에 자연은 그 자체로 도의 세계를 간직한다는 사유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이미 스스로 존재하는 도를 인간만이 스스로 무너뜨리는데, 이러한 인위가 얼마나 자기 파괴적인지를 반복 진술함으로써 현대인의 어리석음을 질책한다.
그러나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과정은 주술적 효과로써 각인을 요구하는데, 이 또한 하나의 에고를 형성하는 것으로서 단점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이 책은 철학서가 지닌 독해의 어려움을 상쇄하고 줄곧 독자의 몰입을 유도하여 매사 급하지 않은 달팽이처럼 느리게 도의 세계로 이끈다.
문면을 통한 무심의 자유, 즉 에고가 없는 상태를 직시하기 위해 장자는 여러 우화를 동원한다. 기성자라는 싸움닭을 훈련시키는 사람과 왕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은 자인 붓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원숭이의 흉내 내기 특성을 통해 인간 내면의 모방심리를 제거하고 자기 자신으로 서는 법을 설파한다. 또 거북이의 생을 예로 들어 숭배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진흙과 같은 자연 상태에서 평범하게 사는 생이 아름다운 생이며 도의 세계를 사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때로는 “신발이 발에 꼭 맞으면/ 발의 존재를 잊는” 것처럼 “마음이 옳으면/ 모든 옳고 그름의 판단을 잊는다”는 현상계를 통해 도의 세계를 비유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를 토대로 한번 깨닫고 나면 그것으로 끝인 돈오돈수도 있겠으나 마음이라는 것, 에고라는 것은 어쩌면 신발이 발에 맞았다가 다시 맞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돈오점수와 같은 깨달음과 수련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나 없는 나’의 상태의 지속이라기보다는 ‘나 없음’의 상태에서 다시 나의 세계로 들어갔다가도 다시 나 없음의 세계를 닦는 과정을 언급한다. 이러한 과정으로서 장자의 도를 라즈니쉬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은 그대가 그것을 남에 대해서 사용할 때는 거의 언제나 옳다. 그리고 그대 자신에 대해서 사용할 때는 거의 언제나 틀”린 것이라고.
장자는 도의 세계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 에둘러 말하거나 은유나 우의, 상징의 수사를 차용해 독자의 시선을 이끈다. 때문에 장자를 말할 때 시적이라든가 문학적이라는 관용구가 뒤따르곤 한다. 가령 “물고기는 물에서 나고, 사람은 도에서 난다”는 언술은 물고기가 물을 느낄 수 없듯이 도에서 난 사람은 도를 느낄 수는 없지만 이미 도를 사는 것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도를 찾아 헤맨다는 비유적 방법이 그것이다.
이렇듯 도의 세계를 비유적 언술로 말하면서 개인의 수양과 내적 깨달음의 세계를 강조하는 장자는 개인의 수양은 어떤 완성체로 드러나기보다는 늘 수행의 과정에 있다고 강조한다. 말하자면 “거의 준비가 된 상태”이며 그 단계에서 에고를 버려야만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에고는 인식과 행위의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데, 이 책에서는 내적 깨달음으로 가는 기제로써 마음의 “진공상태를 꿈꾸라”고 강조하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 한다. 그랬을 때 마음은 “흰 구름과 같”고 “바람과 같”고 “바위와 같”아서 자신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명화되면 될수록 미래는 위험할 것이라는 장자의 사유는 현시대의 독법으로도 가능할 것인가.
August 07, 2020 at 10:25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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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장자, 도를 말하다 - 무심 혹은 자유의 독법 - 부안독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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