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문의 시계추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의 시대정신은 창업이었다. 그러나 새 아이디어가 아니라 선진국의 제품과 서비스를 모방하는 `패스트 폴로어` 양태였다. 이때 경영자는 전문관리인이어야 했다. 창업자든 후계자든, 틀리지 않고 사고만 치지 않으면 성공한 경영인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같은 방식은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몰이해다. 잘 베끼는 것도 실력이던 근대화의 그늘은 사라졌다. 이제 `카피`할 물건은 없다. 이제 경영자로서의 리더는 관리능력 그 이상을 지향하라고 권 고문은 힘주어 말한다. 질문은 여기서 갈린다. `최악의 리더의 실책은 무엇인가. 또 위대한 리더의 조건은 무엇인가.` 평생에 걸친 경영 철학을 권 고문은 펼친다.
회사의 모든 걸 알려고 하는 이들은, 전문경영자가 아니라 전문관리인일 뿐이다. 그들은 `마이크로 매니저` 혹은 `나노 매니저`로 불려야 마땅하다. "우리 회사 사장은 사장이 아니라 대리급"이라거나 "숲은커녕 나무도 못 보고 나뭇잎만 보는 사장"이란 회식자리 농담은 관리인으로 전락한 리더의 실책을 은유한다. 경영자는 달라야 한다. 권한을 과감히 위임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리더의 조건이다. 전자 계열 사장이 금융 계열도 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이러한 권한 위임과 미래 설계에서 나온다.

위기를 감각하고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이 위대한 리더를 잉태한다. 위기 상황에선 `삼간(三間)의 변화`를 기억해야 한다. 분위기 반전이 요구되면 시간, 공간, 인간 중 하나라도 바꾸라는 뜻이다. 삼성의 `7·4제(7시 출근 후 4시 퇴근)`는 당시 시간적 변화의 충격파였고 추상화가 몬드리안의 작품 패턴을 벽면에 채색했던 일화도 조직 변화의 일환이었다고 권 고문은 회고한다.
리더는 인물을 알아보며 자신도 성장한다. 능력(capability)과 그릇(capacity)은 엄연히 다르다. 인재는 지식으로서의 능력보다 지혜로서의 그릇이 커야 한다. 출중한 항우가 별 볼일 없던 유방에게 천하를 내어준 것도 결국 그릇의 차이였다고 권 고문은 쓴다. 능력은 생존의 문제이나 성장은 그릇에서 온다.
동류의 사람들이 모이면 에너지는 낼 수 있어도 시너지를 내기가 쉽지 않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토론하고 논쟁해야 시너지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조직은 동종(同種)을 뜻하는 호모지니어스(homogeneous)형이 아닌 수많은 국가, 인종, 세대, 다시 말해 이종(異種)의 결집체인 헤테로지니어스(heterogeneous)여야 한다고 권 고문은 강조한다. 헤테로지니어스 조직을 경쟁자보다 절대 우위에 놓아야 한다. 무슨 아이디어를 갖고 결과물을 창조하는지, 무엇을 하려는지조차 상대가 알 수 없을 때 조직은 성공한다.
창조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뉴노멀 시대, 권오현 고문은 "창조라는 공(功)은 실패라는 과(過)와 함께 간다. 공과 과는 빛과 그림자의 관계"라고 결론짓고는 참된 리더가 기업 개혁의 선봉장이 되라고 주문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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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04, 2020 at 02:54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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